사진 출처, GETTY IMAGES

  • 기자, 홀리 혼드리치
  • 기자, BBC News
  • Reporting from 워싱턴
  • 25분 전

지난 몇주간 경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니키 헤일리 전 UN 대사가 지난 6일(현지시간) 전 라이벌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경고를 남기며 결국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헤일리 후보는 사퇴 연설에서 “이제 공화당에서 지지하지 않는 이들의 표를 얻는 건 트럼프에게 달려 있다”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트럼프가 이를 해낼 수 있길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헤일리 후보의 사퇴는 사실상 올해 선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4년 전 트럼프 대 바이든 대결의 재현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이제 대선에서 중요한 새로운 질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연 헤일리 후보 지지자들의 표심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를 중심으로 한 공화당 내 반트럼프파와 중도층의 연합은 트럼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트럼프는 이미 지난 슈퍼 화요일에 연달아 승리를 거두며 공화당 후보로서의 자리를 더욱 공고히 했다.

그러나 온건한 성향의, 대학 교육을 받은, 교외 지역 거주 유권자들이 뭉친 헤일리 지지층은 경선에서 2번의 승리를 끌어냈으며, 이젠 더욱 상당한 힘을 쥐게 됐다.

이들은 역사적으로도 대선에서의 영향력을 입증한 집단으로, 이번에도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헤일리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공화당의 전략가 케빈 매든은 “이번 선거 결과를 결정한 세력이 바로 이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트럼프와 바이든 후보 모두 이를 알고 있다. 지난 6일 헤일리 후보가 사퇴를 발표하자마자 두 후보 모두 즉각 성명서를 발표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서로 달랐다. 우선 바이든 현 대통령은 헤일리 후보에게 축하를 전하는 한편, 헤일리의 지지자들에게 “내 선거 캠프엔 여러분들을 위한 자리가 있다”며 직접적인 설득과 함께 공통점이 있음을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헤일리 후보를 인정하는 발언 대신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운동에 참여해달라”며 그 지지층을 끌어들이고자 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전문가들은 헤일리 후보 지지층을 반트럼파, 중도층, 공화당 충성 지지자 등 크게 3가지 범주로 나눈다.

그중에서도 반트럼프파의 방향은 조금 더 명확하다. 어찌 됐든 트럼프는 안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경선 기간 내내 이들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헤일리 후보에 대한 자신들의 지지를 표현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공화당원으로 헤일리의 지지자이자, 지난 2016년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 후보로 지명됐을 땐 당을 떠났다는 홀트 모란은 “트럼프는 공화당의 암적인 존재”라고 비난하며 “그는 미국에 그저 재앙”이라며 일갈했다.

선거 유세 기간 이러한 반트럼프 유권자 대부분은 헤일리 후보 자체를 언급하는 대신 트럼프가 직면한 엄청난 법적 문제를 지적하거나,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사태는 트럼프가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경멸이라고 표현하며 헤일리 후보에 대한 지지를 드러냈다.

사실 실제로 헤일리 후보가 트럼프를 넘어설 수 있으리라 본 이는 거의 없었으나, 그런데도 이들은 헤일리에게 표를 던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품은 적대감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항의의 표시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반트럼프 유권자들은 민주당의 낙관적인 전망에 근거가 된다.

민주당의 베테랑 전략가인 사이먼 로젠버그는 사전투표를 실시한 주에서의 일부 여론조사에선 헤일리 지지층의 “상당수”가 바이든 현 대통령에게 투표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노스캐롤라이나에선 헤일리에게 투표한 사람 중 “누가 되든 간에” 최종 공화당 지명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이들은 21%에 불과했다.

로젠버그는 이러한 조사 결과는 공화당엔 “매우 선명한 빨간불”이라면서 “공화당은 분열된 상태다 … 헤일리 후보는 이러한 분열이 실제이며 심각한 일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트럼프 후보와 그 지지 세력은 헤일리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고자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설 및 인터뷰를 통해 헤일리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을 더욱더 쏟아냈다.

헤일리 후보가 사퇴한 후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 대신 헤일리 후보는 “완파당했다 … 기록적인 방식이다”며 그의 패배를 조롱했으며, 헤일리 지지자들에게도 자신을 위해 결집해달라는 미적지근한 초대장을 보냈을 뿐이다.

로젠버그는 이러한 트럼프의 행동은 정치적으로 “무척 어리석은 짓”이라면서 “공화당은 완전히 내부 결집하지 않고선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트럼ㅍ 전 대통령은 공화당 내에서 굳건한 지지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 내 헤일리 지지층이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이 오는 11월 반드시 바이든에 표를 던질 것이라 장담할 순 없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당파적 유대는 그렇게 쉽게 깨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민주당의 전략가인 케이트 마에더는 “(당파적 유대가 깨지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면서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의 정치는 마치 부족 싸움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도층에서도 다른 편으로 설득될 수 있는 이들은 매우 적다”고 지적했다.

과거 주요 정당 내 경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놓고 당을 배신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2008년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버락 오바마에게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내준 직후, 클린턴 지지자 중 거의 3분의 1이 차라리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작 선거 날이 되자, 클린턴 지지자의 82%가 오바마를 택했다.

헤일리 후보는 트럼프에 대해 점점 더 날 선, 개인적인 공격을 하긴 했으나, 그래도 바이든 현 대통령이 더 위험한 후보라는 노선은 고수했다. 그렇기에 누가 후보가 되든 자신은 공화당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했다고 말할 여지를 남긴 것이다.

공화당의 전략가인 휘트 아이어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닌 정치적 약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이어스는 “다수의 헤일리 지지자들은 바이든을 원치 않는다”면서 바이든의 성과에 대한 지지도도 낮고, 출마하기엔 바이든이 너무 고령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헤일리 지지자 또한 지난 몇 달간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의견을 드러냈다. 트럼프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국경 지역 이민자 문제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경제 정책이 좋지 못한 바이든에게 투표할진 모르겠다고 했다.

평생 공화당원이며, 이번엔 헤일리를 지지했다는 팀 퍼거슨은 “수년간 우리는 차악을 선택해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퍼거슨은 “난 바이든에게 투표할 순 없다”면서 “나는 다시 트럼프를 뽑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처럼 기분은 좋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불만은 공화당 지지층 내 널리 퍼져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모닝 컨설트’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19%는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중 혐오자”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러한 무관심으로 인해 다수의 유권자가 아예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제기한다.

매든은 “(바이든 대 트럼프는) 누구도 원치 않았던 재대결”이라면서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고) 그저 집에 머무르려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내 경제의 변화,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의 상황, 트럼프나 바이든의 난처한 실수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중도층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

그리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수많은 법적 문제에 직면하면서 전망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가 형사 사건 4건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일부 공화당 지지자들은 등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

인디애나주 출신의 공화당원인 짐 설리반은 바이든을 위해 당을 배신하진 않겠지만, 여전히 결정을 내린 건 아니라고 했다. 진정한 이중 혐오자인 설리반은 트럼프도 싫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봤다. “지금 이 상황에서 고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까지 8개월이 남은 지금, 전문가들 모두 설리반과 같은 유권자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장담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고 말한다.

매든은 “이러한 모든 질문에 대해선 정말 치열한 경쟁이 될 것이다, 우리도 아직 모른다는 답만 할 수 있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