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첫 행보는 원로학자 김형석 명예교수의 자택방문이었다. 지난 4일 사퇴수리된 후 대검찰청을 떠나는 모습. 양회성 기자 [email protected]중도 사퇴 후 칩거하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첫 외부 일정으로 101세 철학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찾은 것은 앞으로 윤 전 총장이 어떻게 정치를 해나갈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단초가 된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우리 사회 최고 원로인 김 명예교수를, 그것도 대선 행보를 막 시작하는 중대한 시점에 만났다는 것은 윤 전 총장의 향후 정치적 진로를 가늠하는 데 있어 함의하는 바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연세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김 명예교수는 100세가 넘은 나이도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원로 인사다. 17세 때 도산 안창호의 설교를 듣고 뜻을 세웠다는 김 명예교수는 어릴 적에는 시인 윤동주와 친구였고, 대학에서는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공부한 사이다. 그의 인생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의 발전사이기도 한 김 명예교수의 말은 그래서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이 그런 원로 중에 원로를 먼저 찾은 것은 본격적인 대선 행보를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가다듬는 데 있어 우리 사회 최고 어른이자 대선배의 지혜를 먼저 듣고 새기겠다는 자세인 것으로 해석된다. 당장의 대선 전략보다는 보다 더 높은 차원의 국가적 과제와 이를 달성할 지도자의 덕목이 무엇인지를 먼저 공부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 DB.동아일보에 “대한민국은 지금 ‘퇴락의 길’에 있다”는 칼럼을 실었던 김 명예교수는 윤 전 총장을 2시간 정도 만난 자리에서 “이대로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면 그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며 “더 늦으면 바로 잡을 수도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전 총장이 이달 4일 사퇴하면서 “저는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쌓아올린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고 있기 어렵다”며 ‘상식과 정의’를 강조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김 명예교수는 또 윤 전 총장에게 인재를 널리 구하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흔히들 야당에 인재가 없다고 하는데 인재는 야당에만 없는 것도 아니고 여당에도 없다”며 “중요한 건 한 사람의 유능한 인재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직 공식 출사표를 던지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차기 대선 후보로 등판해 있는 윤 전 총장에게 ‘인재론’을 전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일각에서 평생을 검사로 살아온 윤 전 총장이 법집행 이외의 분야에서는 경험이나 전문 지식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김 명예교수는 그런 시각과는 별개로 국가 지도자라면 팀워크를 이뤄 함께 국정을 끌어갈 수 있는 능력 있는 인재를 많이 찾아야 한다는 점을 핵심 덕목으로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상징성이 큰 퇴임 후 첫 외부 만남을 기성 정치권과 거리를 뒀다는 점도 향후 윤 전 총장의 정치적 행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윤 전 총장이 현재 보수 야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떠올라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기존 보수 야당인 국민의힘에 곧장 들어가거나 정치적 연대를 시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원래부터 윤 전 총장은 정치를 할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데다 공교롭게도 그가 ‘국정농단 사태’라는 정치적 격변기를 지나며 보수 진영의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한 것이 국민의힘은 물론 윤 전 총장 본인에게도 부담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여야를 막론하고 비리가 있으면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해야 한다는 기준을 가지고 검사로 살아온 윤 전 총장의 평소 소신도 구태 이미지가 강한 기성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보인다.

결국 원래부터 가졌던 자기 열망이 아닌 정치적 압박에 의해 대선 주자가 된 윤 전 총장으로선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던 기존 보수 야당이나, 상식과 정의에 어긋나게 국정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현 여권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향후에도 여야 정치권과 거리를 두면서 시대의 목소리를 듣는 정치 행보를 당분간 이어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편 지난주 2위와의 대선 지지율 격차를 더 벌렸던 윤 전 총장은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 의뢰로 실시한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39.1%로 최고 지지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위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1.7%, 3위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1.9%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홈페이지에 있다.

이태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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