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정부가 자금세탁 등 혐의로 미국에 인도한 북한 사업가 문철명(56)이 20일(현지시간) 미 연방수사국(FBI)에 구금됐다고 AP통신이 21일 보도했다. 문 씨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 북한에 사치품을 불법으로 수출하고, 자금 세탁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 혐의 입증땐 북한의 ‘뒷 문’ 걸어 잠글 수단 확보
북, 대북적대시 정책의 산물로 여기며 거센 반발 나설 수도

북한이 자국민을 미국에 넘겼다는 이유로 말레이시아와 단교를 선언한 데 이어 지난 21일 말레이시아 대사관을 폐쇄했다. 김유성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 대리가 21일 대사관을 떠나기전 말레이시아와 미국 정부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에 따라 미국 수사 당국이 북한의 불법 자금 세탁 등을 직접 수사할 전망이다. 미국이 재판을 위해 북한 주민을 확보한 건 건 처음으로,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대북제재 위반 여부 및 방법을 직접 들여다보는 사실이 공개된 것 역시 처음이다.

앞서 말레이시아 당국은 문 씨를 자금세탁 등에 관여한 혐의로 미국에 신병을 넘겼고, 북한은 이에 반발해 지난 19일 말레이시아와의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이어 북한 외교관과 가족 등 33명은 21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통해 중국 상하이로 출국했다.

AP에 따르면 문 씨는 자신의 체포 및 미국 압송이 북한에 압력을 행사하려는 미국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문 씨가 자신의 ‘행위’를 순순히 미국 수사 당국에 공개할지는 미지수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문 씨의 혐의가 사실이라면 북한 당국과 치밀한 계획하에 ‘행동’을 했을 것이고, 자신의 행위를 외부에 발설하지 않도록 철저한 밀봉(密封) 교육을 받고, 가족 등의 인질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며 “재판 과정에서 그의 입을 열려는 미국과 이를 지키려는 문씨간 창과방패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 과정에서 그가 변심해 혐의 사실을 공개할 경우 북한 입장에선 대북제재의 ‘틈’을 잃게 된다. 반대로 미국 입장에선 북한의 ‘뒷문’을 걸어 잠글 수 있는 ‘스모킹 건’을 찾게 된다. 북한이 자국민 한 명의 신병 인도를 이유로 극단적 선택인 외교 단절에 이어 ‘보복’을 언급하며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19일 외무성 담화에서 “(문 씨의 신병 인도는) 터무니없는 날조이고 완전한 모략”이라며, 신병 인도를 요청한 미국을 향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미국의 새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침묵을 지키며 관망하고 있는 북한이 군사적 움직임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1월 20일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정책을 마지막 단계에서 검토 중인데 문 씨의 신병확보가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전직 정부 당국자는 “미국은 지난 2월 북한에 접촉을 제안했던 것처럼 외교의 문을 열어 두면서도 인도적 문제나 불법 행위에 대해선 철저히 대응한다는 투트랙 전략으로 접근할 것”이라며 “북한은 이번 사건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결과로 인식하며 문 씨의 조사과정이나 결과를 지켜보며 강대 강의 충돌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