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7년 숙원 못 풀었다…제도 도입 첫 조정부터 ‘주먹구구 요금’ 비판

-유가 상승에 시장서 구입가격 이미 올랐는데 판매 가격은 그대로

-“한전 경영악화 요인…제도 운영 실효성 및 전기요금 신뢰성 의문”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전기요금의 연료비 연동제 도입 이후 처음 이루어진 요금 조정이 결국 정치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4.7 재보선을 앞두고 7년만에 추진된 한국전력의 전기요금 인상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이에 따라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가 무늬에 그치고 있다는 업계에 지적이 나왔다.

정부와 한전이 어렵사리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해놓고 경제논리보다는 정치상황에 따라 전기요금을 주먹구구로 책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전은 그간 연료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실적악화가 이어졌다며 올해부터 숙원이었던 연료비 연동제를 시행했다. 지난해 연초부터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감소로 곤두박질치던 유가가 하반기부터 서서히 오르더니 연동제 시행과 함께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유가 상승은 이미 한국전력의 전력 구입 시장에 반영돼 발전 연료비 단가를 크게 끌어올렸다. 전력 구입비가 높아졌으니 한국전력이 소비자에 전력을 판매하는 가격도 당연히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시장의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것도 연료비 연동제 도입 후 첫 전기요금 조정부터 연료비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연료비 연동제는 연료비 변화에 맞춰 요금을 조정하는 것이다. 연료비 변화에 요금조정을 못할 바에야 뭐하러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특히 이번 전기료 인상 보류 조치는 선거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우려한 정부가 한전에 압력을 넣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결론이라는 게 시장 안팎의 분석이다.

연료비 연동제가 첫 전기요금 조정부터 무색해지면서 앞으로 연료비 연동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연료비 연동제가 정부의 편의에 따라 정치적으로 운영되면 전기요금 조정의 신뢰성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전기요금과 직결된 탈원전 등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국론이 갈려 있고 전기요금과 별도 고지 방식 등을 통해 국민에 부과되는 기후환경 비용이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예고된 상황이다.

업계는 22일 정부와 한전의 2분기 전기요금 인상 유보 소식을 듣고 연료비 연동제는 공식에 의해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정치적 요인을 고려해 주먹구구식으로 제도를 운영할 경우 제도 자체의 정당성이 훼손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국제유가 상승으로 발전비용은 이미 시장가격에 반영돼 최근 전력도매가격(SMP)이 4개월 새 두 배 상승 등 크게 올랐음에도 전기요금은 동결됐다. 22일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들어 이날까지 SMP는 통합 가중평균 기준 1KWh당 84.16원으로 코로나19 본격화 이전 지난해 1월 84.54원 이후 가장 높았다. 특히 지난해 최저였던 11월 49.80원에 비하면 두배 가까이로 오른 셈이다.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사오는 시장 가격은 이미 올랐는데 소비자에 판매하는 가격은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연료비 연동제 시행계획에 따라 연간, 분기별 요금 인상 한도가 정해져 있는 만큼 유가 상승이 가파르고 장기화할 경우 한전의 경영악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원래대로라면 연료비조정단가는 1분기보다 2.8원 오른 kWh당 -0.2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식이면 연동제 도입 취지와 신뢰도가 훼손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연동제 유보는 산업부에서 종합적인 요소를 고려해 결정한다”며 “이번에는 정말 이례적인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정부가 에너지전환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원칙적으로 제도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에 유가를 비롯해 연료가격이 인상됐다고 하면 당연히 요금 인상을 하는 게 정상”이라며 “이럴 거면 아무런 제도도 필요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물론 정부는 정책을 수행할 때 정무적인 판단을 한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하면 도입 취지가 무색한 거 아닌가”라며 “그때그때 사정 봐서 하면 그건 결국은 정부 편의대로 하겠다는, 전기요금을 정책수단으로 사용하는 관습을 버리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도 도입 당시에도 많은 전문가들이 ‘정치적인 눈치를 안보고 시행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며 “애초에 분기별 상한이 있어 인상을 해도 낮은 수준인데 유가가 2∼3배 오른 것도 아니고 경제현상에 맞게 가야 하는데 아예 유보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김종갑 사장의 사퇴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 사장은 취임 당시부터 ‘전기요금 합리화’를 주창했다. 지난해 말 연료비연동제 도입으로 이같은 김 사장의 뜻이 이뤄지는 듯 했으나 결국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한전공대 법안 통과,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등으로 수천억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데 재원마련과 재무구조 정상화를 위해 추진한 연료비연동제가 결국 유명무실해지자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전은 지난 19일부터 신임사장 공모 절차에 돌입했다.

한 발전공기업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는 4월에 새로운 한전그룹사 사장단이 취임하자마자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여전히 탈원전, 탈석탄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연료비연동제를 떠나 급격한 전기요금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