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국제무대 복귀…“조국 하늘 아래에서 공 찰 날 기다려”
나이지리아 등 이슬람 국가 곳곳서 금기 깨고 여자축구 새싹 움터

아프간 여성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지난 10월 26일 위민스 시리즈 1차전에서 아프리카 차드를 상대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FIFA 홈페이지

아프간 여성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지난 10월 26일 위민스 시리즈 1차전에서 아프리카 차드를 상대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FIFA 홈페이지

탈레반 정권의 여성 스포츠 금지 이후 사라진 아프가니스탄 여성 축구가 4년 만에 국제무대에 복귀했다. 최근 모로코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주최 친선대회 ‘피파 유나이츠: 위민스 시리즈 2025(FIFA Unites: Women’s Series 2025)’를 통해 ‘아프간 여성 유나이티드(Afghan Women United)’가 첫 경기를 치른 것이다. 원래 이번 위민스 시리즈 대회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아프간 선수단의 입국이 거부되면서 모로코로 개최지가 변경됐다. 모로코 왕립축구협회는 “이 대회를 통해 여성의 스포츠 참여를 지지한다”며 대회를 유치했다.

[플랫]4년 만에 국제무대 복귀한 아프간 여성 축구팀…“여성들의 목소리가 되고 싶다”

지난 10월 26일 모로코 베레시드에서 열린 첫 경기에서 아프간 여성 유나이티드는 아프리카 차드에 1대 6으로 패했다. 하지만 호주 멜버른에 거주하고 있는 마노즈 누리가 초반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자 벤치와 관중석에서는 눈물 섞인 환호가 터져 나왔다. 결과는 대패였지만 아프간 여성들에게 이날 경기는 단순한 경기가 아니었다. 탈레반 정권하에서 ‘범죄’로 규정된 축구를 공인된 무대에서 다시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해방의 상징이었다. 주장 파티마 하이더리는 서남아시아 대표 언론 알자지라를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단 하나, ‘뛰는 자유’였다”며 “우리는 단지 선수로서가 아니라 아프간 여성으로서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이더리는 “이 골은 우리 모두의 승리였다. 우리에게 축구는 생명과 같다”며 “조국 하늘 아래에서 공을 찰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출신 폴린 해밀 감독은 “선수들은 오랜 시간 두려움 속에서도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다”며 “그 용기가 전 세계를 향해 드러난 날”이라고 자평했다.

“스포츠가 억압 넘어설 수 있다는 상징적 사례”

앞서 FIFA는 지난 5월 여성 난민 선수들로 구성된 ‘아프간 여성 난민팀(Afghan Women’s Refugee Team)’ 창단을 승인했다. 7월 시드니에서 열린 선발 캠프에는 전·현직 대표 선수들이 참가했다. FIFA 잔니 인판티노 회장은 “이것은 단지 한 나라의 복귀가 아니라 스포츠가 억압을 넘어설 수 있다는 상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이후 FIFA는 선수단과 협의를 거쳐 팀 명칭에서 ‘난민’을 삭제하고, ‘아프간 여성 유나이티드’라는 공식 명칭을 확정했다.

2021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후 여성의 스포츠 활동은 거의 다 금지됐다. 여성들은 경기장 출입은 물론 체육 활동 자체가 불법으로 간주해 국가 내에서 공식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길이 막혔다. 당시 아프간에는 여성 축구선수 25명이 정식 계약을 맺고 있었으나, 탈레반 정부가 ‘여성 스포츠는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며 출전을 전면 금지하면서 팀은 해체됐다. 이후 선수들은 호주 등으로 탈출해 망명 상태에서 축구를 이어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FIFA, 국제크리켓위원회(ICC), 국제패럴림픽위원회 등도 망명 중인 아프간 여성 선수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플랫]누군가에게 올림픽은…아프간 여성선수 손에 들린 ‘교육, 우리의 권리’

2024년 8월 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서 열린 2024 올림픽 게임 14일차 파리 예선전에서 난민 올림픽팀의 브래이크 덴서 마니자 탈라시가 난민팀으로 출전해 “자유 아프가니스탄 여성”이라고 적힌 망토를 펼쳐보이고 있다. 게티이미지

2024년 8월 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서 열린 2024 올림픽 게임 14일차 파리 예선전에서 난민 올림픽팀의 브래이크 덴서 마니자 탈라시가 난민팀으로 출전해 “자유 아프가니스탄 여성”이라고 적힌 망토를 펼쳐보이고 있다. 게티이미지

아프간 여성들은 국제 스포츠 무대에 꾸준히 출전하면서 국제사회를 향해 아프간 여성의 인권 탄압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한 로비나 무키마르는 히잡을 쓰고 달리며 여성 스포츠의 상징이 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육상대표 메흐보바 아흐디야르는 끊임없는 위협 속에 결국 유럽으로 망명했다.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는 브레이크댄서 마니자 탈라시가 난민팀으로 출전해 ‘Free Afghan Women’이라는 문구가 적힌 망토를 입고 무대에 섰다. 자키아 쿠다다디(태권도)는 억압을 뚫고 국제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자 프로팀 창단 등 뚜렷한 변화 이끌어

나이지리아 중북부 꾸와라 일로린에서 열린 여자축구 대회를 앞두고 모델 퀸스 풋볼 아카데미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 로이터

나이지리아 중북부 꾸와라 일로린에서 열린 여자축구 대회를 앞두고 모델 퀸스 풋볼 아카데미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 로이터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이 축구를 한다는 것은 취미나 운동을 넘어선 일이다. 전통과 종교, 가족과 사회가 정해놓은 경계선에 도전하는 행위이자 ‘존재의 선언’에 가깝다. 나이지리아와 이집트에서는 여성 축구선수들이 사회변화를 향한 뚜렷한 진전을 이끌고 있다.

나이지리아 중북부 꾸와라는 이슬람 율법이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곳이다. 모델 퀸스 풋볼 아카데미 소속 10대 선수들은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비난의 시선을 견뎌야 한다. 17세 마리암 무함마드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나더러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거라 말하지만 나는 큰일을 해낼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무함마드의 어머니 케힌데는 지역사회의 비난 속에서도 딸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는 팀 유니폼 색깔에 맞춰 맞춤형 히잡을 만들어주며 “이게 신앙을 지키면서 운동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19세 바시라트 오모토쇼는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훈련을 자주 빠진다. 그는 길거리 음식점에서 어머니를 도우며 “연습 시간에 팀이 지나가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가족을 돕는 것도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감독 무이히딘 압둘와합은 부모들을 찾아다니며 “단정한 복장 규정이 마련돼 있다”고 설득하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은 딸이 운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변화의 징후는 있다. 나이지리아 여자프로축구리그(NWFL)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2024년 기준 리그 관중은 35%, 시청률은 40% 상승했다.

이집트에서도 여성 축구는 오랜 시간 ‘금기된 영역’이었다. 알 아흘리, 자말렉 같은 명문 구단이 남성 중심 전통 속에서 여성팀 창단을 망설인 시절 소녀들은 골목길에서 외롭게 공을 찼다. 카이로 출신 아미라 무함마드는 “우리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곳에서 그저 축구를 좋아해 뛰었다”며 “이제야 그 꿈이 빛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24년 이집트 여자프리미어리그가 처음으로 전국 방송에 중계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방송사 ‘온 스포츠’가 경기 중계뿐 아니라 분석까지 제공하면서 여성 축구는 공적 담론의 장에 들어왔다. 알 아흘리와 자말렉 등 대형 구단들이 FIFA 규정과 사회적 인식 변화에 힘입어 여성팀을 정식으로 창단했다. 알 아흘리 코치 아야 압델 하디는 “예전엔 딸이 축구를 하면 수치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부모들이 직접 아이를 등록시킨다”며 “텔레비전 중계가 사회 인식을 바꿨다”고 평가했다. 지도자 야스민 야세르는 “내가 롤모델이 돼 부모들이 딸의 가능성을 믿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 김세훈 기자 [email protected]